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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에게 '모모'가 되어주는 세상을 꿈꾸며고등학생, 책으로 세상읽기 ④ 글쓴이 : 강범수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사진(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비룡소/ 원제 : Momo (1973년) '어느 커다란 도시와 작은 소녀'로 시작되는 이 책은 판타지라고 할 수도 있고, 이야기 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갈수록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들 삶과도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누군가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생각하며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며 게을러지기도 한다. 시간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잠을 잘 때조차도. 그렇게 시간은 우리 삶 속에 이미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 채워지는 시간들이 나에겐 무한하게 제공되는 공기와 같았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에겐 그저 시간의 흐름일 뿐이었다. 모모라는 까만 눈동자를 가진 어린 소녀를 만났다. 모모를 만나고 나는 방향도 없이 무작정 걷고 있었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쉬어보았다. 가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제자리걸음인 줄도 모르고 있었던 나였다. 혹시 그동안 나 역시 시간을 훔치는 도둑에게 이미 내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아니었는지 덜컥 겁이 났다. 어느 도시, 어디서 왔는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는지 모를 소녀. 이름은 모모이고 나이는 백두 살이라고 한다. 어린 소녀였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은 자신을 돌아보며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스스로 찾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경청이 특별한 무엇인가가 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모모와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들이 있다. 그들은 늘 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회색 중절모에 회색 서류 가방, 회색 담배를 피우며 사람들을 유혹했다. 사람들은 회색 신사가 알려준 대로 그들의 시간들을 저축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시간도,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는 시간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꽃을 들고 찾아가는 시간도, 고객들과 정다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도 아꼈다. 이전에는 그들에게 평범하고 소중했던 시간들을 회색 신사라는 시간 도둑을 위해 ‘미래’라는 이름으로 저축하기 시작했다. 사소했지만 여유로웠던 일상들은 그들에게서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도시는 어느새 타인에 대한 관심도 소통도 없는 회색빛으로 가득한 우울한 세상이 되어갔다. <모모>는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들과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모모는 나에게 내가 지나온 과거라는 시간과 현재의 시간 그리고 앞으로 채워가야 할 미래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줬다. 나만의 목표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서 부모님이나 동생, 친구들에게 따뜻한 눈길,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을 재기 위해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2019년 겨울부터 시작된 코로나 19로 요즘은 오프라인의 만남들이 대부분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평범했던 일상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람들은 움츠려들고 절망하기도 한다. 나와 우리 모두에게 모모가 필요한 요즘이다. 자신의 소리를 멈추고 누군가의 소리에 진정으로 마음을 열어주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힘든 시간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모>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모모가 되어주는 세상’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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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과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세상고등학생, 책으로 세상읽기 ③ 글쓴이 : 강범수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사진(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지은이 스티븐 호킹, 레너드 믈로디노프/ 옮긴이 전대호/ 펴낸곳 까치) 원제 : A Briefer History of Time (2005년)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과 그리고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세상이 있다. 바로 상상력과 과학이 필요한 순간이다. 태양은 낮에 존재하고 달은 밤에 존재한다. 어둠이 있어야 별은 반짝였고 그들에겐 늘 규칙이 있었다. 하늘 너머 우주 그리고 우주 너머의 세상은 우리와 시간과 공간을 사이에 두고 어마어마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 하늘과 우주에 대한 동경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부인했던 코페르니쿠스 그 훨씬 전, 인류가 하늘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주는 동경의 대상이다. 이 책의 핵심은 우주과학과 물리학의 통일이론이다. 즉 ‘과학의 본질은 무엇이고 우주는 어떻게 진화되었는가?’ 에 대한 답이다. 따라서 빅뱅으로 만들어진 우주와 어쩌면 신의 세상일 수 있는 빅뱅 이전의 알 수 없는 시간이 있기에 과학과 철학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가 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던 갈릴레이에서부터 우주의 시간여행은 시작되었다. 뉴턴은 태양계의 모든 천체 운동을 지배하는 힘인 중력은 우주의 모든 물질 입자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이전의 천문학자들이 관측했던 우주에 관한 원리들을 수학적으로 접근하고 계산함으로써 행성의 운동과 위성의 운동에도 적용시켰다. 즉 뉴턴의 중력법칙에 따라 지구와 달의 행성들의 궤도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뉴턴의 중력이론을 바탕으로 ‘물체와 시공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발전시킨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이라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그 이론은 중력이 다른 힘들과 같은 종류의 힘이 아니며, 과거에 생각했던 것처럼 시공이 평평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라는 혁명적인 주장에 기초했다. 공간과 시간은 역동적인 양이며 우주에서의 중력장이 시간과 공간을 휘게 변화시키고 시공의 구조는 물체가 움직이고 힘이 작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주여행의 끝에는 빅뱅과 블랙홀이 있다. 뉴턴의 중력(만유인력)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우주에서의 시간의 출발점인 빅뱅과 시간의 끝인 빅크런치, 그리고 블랙홀을 형성하는 국부 영역들에서의 특이점들을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얽힌 수수께끼는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을 풀기에는 어렵다. ‘한 번쯤 머릿속으로 그려봤을 '타임머신'은 과연 상상으로만 그칠 것인가?’, ‘아니면 현실 가능한 것일까?’, ‘우주의 시작과 끝은 있을까?’, ‘블랙홀 너머의 세상은 있을까?’ 이전의 과학자들이 우주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듯이 나 또한 우주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우주와 우주 너머의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여전히 어렵지만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좀 더 가까이 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바로 이 책이 그 물음에 대한 답이다.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합하면,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즉 시공간의 특이점이나 경계가 없는 유한한 4차원 공간을 형성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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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막내아들이었고, 정대의 친구였던 동호 형에게고등학생 책으로 세상읽기 ③ 글쓴이 : 강범수(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사진(저서 : 소년이 온다/ 지은이 : 한강/ 출판사 : 창비) 어머니의 막내아들이었고, 정대의 친구였던 동호 형에게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그 누군가가 형이어서 다행입니다. 동호 형! 처음 책을 펴는 데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도 무겁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 속 동시대를 살았던 저희 엄마는 네가 내용을 이해하기는 힘들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이해'라는 단어가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고, 먼저 단정 지었으니까요. 그런데 1장 어린 새를 다 넘기기도 전에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앞으로 읽어 내려갈 2장을 마주하기가 막막해졌습니다. 이 두려움이 막막함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할지 잠시 망설여졌으니까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 오기 시작했으니까요. 저는 책을 읽으며 제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 1980년 5월 18일 광주로 어느새 가고 있었습니다. 딱히 누구를 만나러 간 것은 아니었어요. 어쩌면 제 또래의 정대 형을 동호 형을, 그리고 진수 아저씨, 은숙이 누나, 선주 누나가 아니더라도 무서움을 함께 겪었던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읽는 동안 내내 장면을 상상할 수 없었어요. 제가 알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어려웠어요. 임진왜란처럼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백성을 살리기 위해 총으로 칼로 적을 무찔러야 했던 단순하고도 명백한 이유를 이 책에선 찾을 수 없었어요. 왜 그랬어야만 했느냐는 저의 물음은 지금도 갈 길을 잃은 듯합니다. 1장에서의 무서움이 2장, 3장을 넘기며 막막하고 답답해지다가 6장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어리디어린 자식을 먼저 보내고, 사는 내내 그리워하며 살아가야 했던 형의 어머니 이야기는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아" 라는 외침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스며듭니다. 형 엄마의 시간은 오월 어느 날로 멈춘 듯합니다. 꼬박 사십 분을 걸어서 상무관으로 도청으로 막내아들을 데리러 간 그 때, 시민군들에게 더 간절히 애원했으면 막내아들을 데려올 수 있었을까? 그랬으면 그 날 저녁 가족 모두 저녁을 먹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날을 조금씩 잊으며 평범하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이런 만약은 허공에 흩어지고 막내아들을 영영 잃어버린 그 날,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그 날. 그렇게 형의 엄마는 사는 내내 끝끝내 데려오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을 것 같아요. 동호 형! 가장 친한 친구인 정대가 군인의 총에 맞아 죽는 그 끔찍한 장면을 보고 어떤 심정으로 정대의 시체를 찾아다녔나요? 형의 엄마를 통해 본 형은 그냥 평범하고 순수한 어린 중학생이었는데 말이에요. 정말 그들의 무자비한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있었던 건가요? 아름다울 수 없는 기억이, 잊히지 않고 상처로 남은 기억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큰 고통일 수 있는지 진수 아저씨, 은숙이 누나, 선주 누나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그들이 준 상처는 아물지는 몰라도 더 깊은 곳은 아물지 않고 때때로 살아나 힘들게 했을 거 같아요. 상무관에 있던 많은 시체들,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으로 인해 맨살이 드러난 가슴과 옆구리, 광대뼈와 턱, 곤봉으로 맞은 듯한 움푹 함몰된 두개골...... 난생처음 형이 보았을 처참한 광경을 저도 바라봅니다. 입관을 마치고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부르는 애국가, 나라가 죽인 사람들에게 감싸주던 태극기며 불러주던 애국가를 이해할 수 없었던 형을 저도 같은 맘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가 있었고, 갈 곳 잃어 허공에 떠도는 애국가가 있었고, 가족을 잃은 슬픔과 분노의 울부짖음이 있었고, 죽은 이를 위로하듯 피에 젖은 태극기가 있었고, 속절없이 수많은 초가 혼을 달래고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을게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1980년 5월 18일 그 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당당히 맞선 이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해요. 동호 형! 이젠 편히 쉬세요. 그 날은 우리가 앞으로도 역사로 지켜줄 테니까요. 2021년 1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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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쓸모에 대한 성찰,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고등학생, 책으로 세상읽기 ➁ 글쓴이 : 강범수(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재학) 사진(『변신』, 글쓴이 : 프란츠 카프카, 펴낸곳: 문학동네) ‘꿈일까?’ 나도 모르게 주인공과 같은 마음으로 ‘이것은 분명 꿈일 거야’ 라고 생각하며 읽었던 책이다. 시작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침대 속에서 무엇인가, 거미인지 바퀴벌레인지 모를 흉측한 것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왜 하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다리가 많고 털이 많은 벌레라는 설정이었을까? 에 대해 계속 궁금해 하며 제발 꿈에서 깨어 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레고르 잠자는 이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서도 출근 시간에 늦었다는 사실에 놀라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뚱어리를 움직여 침대에서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친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그레고르에게 직장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의 직업은 고된 여행을 해야 하는 외판원이었다. 그에게 직장은 가족의 경제적 부양을 위해 돈을 벌어야하는 곳일 뿐이었다.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그저 먹고 살아야 하는 일일 뿐. 자신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출근하지 않는 그레고르를 보러 온 가족들과 직장의 지배인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지만 그들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레고르에게 이전에는 쉽게 열리던 문도 곤충이 되어버린 지금은 더 이상 문이 아니다. 그저 거대한 벽일 뿐이다. 온 힘을 다해 문을 열고, 자신을 내보이지만 가족들도 지배인도 경악을 금치 못하며 달아나기 바쁘다. 시간이 지나도 꿈은 깨지 않는다. 이젠 꿈이 아닌 현실이다. 그레고르는 벌레의 모습으로 방 안에 갇혀 지내게 된다. 더 이상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그레고르는 그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지내는 것이 전부다. 얼마 동안은 성실히 장남의 역할을 다한 그레고르가 안쓰러워 동정하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에게 그레고르는 불편한 존재가 된다. 그 누구도 성실하고 책임감 강했던 그레고르가 어떻게 벌레가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지에 관심이 없다. 『변신』 은 프란츠 카프카의 1916년 작품이다. 체코에서 태어난 프란츠 카프카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작가의 불행했던 삶이 작품 속에서 녹아 있는 듯하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의 이야기인데도 낯설지 않다. 왜 하필 그레고르 잠자는 다른 것도 아닌 사람들이 혐오 하는 벌레로 변했을까? 결국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는 가족에게 외면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활동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타인에게 철저히 소외당한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기 전 성실한 삶은 아무 의미가 없는 듯, 현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즘 급식을 먹는 아이들을 의미하는 '급식충' 이라던가 틀니를 하는 노인들을 '틀딱충', 한국 남자들을 '한남충', 그리고 엄마들을 의미하는 '맘충' 등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벌레에 비유해서 인격 자체를 깎아내리는 단어들을 어린 학생들까지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 혐오가 공기처럼 떠돌고 있는 느낌이다. 그레고르는 우리 현재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 시대 특별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는데 벌레로 변해버린 이후 소통조차 불가능한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인간이 어떻게 관계에서 소외되는지’, ‘상황이 변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 『변신』 을 읽고 조금은 알게 되어 씁쓸하다. 그에 덧붙여 ‘인간의 쓸모는 무엇인가’를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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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고등학생, 책으로 세상읽기 ① 글쓴이 : 강범수(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재학) 사진(『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출판사)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란 부제목을 보지 못했더라면 나는 어쩌면 제목만 보고 달달하지만 씁쓸한 소설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픔’이라는 명사와 ‘길’이란 명사를 이어보면 그것은 왠지 논리적 모순 혹은 ‘길’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기 위한 역설적 표현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양자를 결합하여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관점에 대하여 반문하며 ‘길’을 찾아보자 손을 내미는 것 같았다. 책에서 보여주는 ‘아픔’은 과거를 지나 현재라는 시간에 걸쳐 다양한 사회문제 속에 담겨있었다. 우리가 어디선가 들었을 혹은 한 번쯤 뉴스를 통해 보았을 사회적 이슈들이었다. 지금까지는 그 이슈들을 머나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차별경험으로 인한 상처, 국가의 역할에 대하여 묻는 재난불평등문제, 평등하지 않는 낙태금지법, 그리고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추적하는 사회역학에서는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변화는 항상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진행된다고 했다. 따라서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에 건강은 ‘공동체의 책임’이라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사회에는 다양한 약자들이 있다. 골리앗과 같은 거대 기업과 맞서야만 하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서부터 삼성반도체 직업병 소송 노동자들, 국민의 안전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소방공무원, 비과학적 근거로 혐오의 대상이 된 성소수자들 그리고 미혼모 등이 바로 강자의 그늘일 수밖에 없는 약자들이다. 그들은 아프다. 어쩌면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그들의 상처와 고통을 외면하며 고립시키는 것은 아닐까? 우리와 함께 공동체라는 사회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기록은 무겁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로 시작한 세월호에 대한 아픔의 역사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에는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과 같은 여러 참사들이 있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것들에 대한 기록이라 할 만한 게 없고 또한 대책도 없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가 지나간 사건으로 치부되지 않고 이러한 참담한 연쇄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반드시 기록되어야 하고 역사 속에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공동체였던 로세토 마을과 인근지역의 심장병 사망률을 비교하는 연구에선 공동체의 사회심리적 요인이 심장병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오늘날에는 공동체 문화가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가 나왔다.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와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중요한지 질문을 던진다. 요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다. 특별할 것 없었던 단순한 일상들이 무너지고 엉키면서 감염에 대한 공포가 혐오와 차별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만들고 있다. 중국인을 비롯하여 아시아인들 모두를 혐오의 대상으로 차별의 강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커서 그 피해는 경제적 약자인 저소득층에게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서 보여준 각각의 사회 문제에 대한 연구, 통계 혹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모두는 사회적 관계망 속에 놓여 있고, 그 속에서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공동체의 힘이 필요한 시기이다. 혐오와 배제가 아닌, 공동체 연대로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 라는 말처럼 우리는 ‘아픔’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그로 인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